(문화일보, 25.10.17) 직지보다 앞선 '증도가자' 세계 최초·문화재 인정 재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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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25-10-17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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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민 국가유산청장 국감서 “다시 면밀히 검토”
2017년 문화재위서 ‘보류’ 결정 다시 살피기로

정부가 고려 시대 활자인 ‘증도가자(證道歌字)’를 세계 최초 금속 활자본으로 인정하고 문화재로 지정하기 위한 검토 작업에 다시 나선다. 허민 국가유산청장은 16일 조계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전남 여수시을)이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와 관련해 질의한 것에 대해 “다시 면밀히 검토하겠다”라고 답했다.
이날 조 의원은 허 청장에게 “남명천화상송증도가(南明泉和尙頌證道歌) 금속활자 인쇄본을 아느냐”고 물은 뒤 그 의미를 간략히 설명했다. 남명천화상송증도가는 중국 당나라 스님 현각(玄覺)이 깨달은 바를 시의 형식으로 저술한 책이다. 증도가자는 이 책을 인쇄하기 위해 1239년경 제작된 금속활자 실물로, 지난 2010년 9월 1일 서지학자 남권희 경북대 문헌정보학과 교수에 의해 그 존재가 알려졌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1점, 다보성갤러리에 101점, 북한에 5점이 있다.
증도가자는 세계 최초 금속활자본으로 알려진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1377)보다 100년 이상 앞섰다. 무엇보다 실물이 남아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직지심체요절과 서양의 구텐베르크 성경(1452)이 금속활자로 찍은 인쇄본 책만 존재하고 실제 활자는 남아 있지 않다.
조 의원은 이런 점을 간략히 설명한 후 지난 2015년 2월 8일 SBS 8시 뉴스에서 ‘직지보다 앞섰다…새 最古금속활자 발견’이라는 제목으로 보도했던 영상을 틀었다. 영상 속 기자는 “학계서 증도가자 진위 논란이 있었으나,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진품이 맞다는 조사보고서를 내놨다”라고 전했다.
조 의원은 “직지심체요절보다 최소 138년 앞섰는데, 금속활자까지 발견됐다”라며 “국가적 경사가 아니냐”라고 그 의미를 강조했다. 그는 “그런데 2017년 문화재위원회가 이 결과를 뒤짚고 부결했다. 그 이유는 뭐냐”라고 허 청장에게 질문했다.
허 청장은 당시 활자의 서체와 주조 조판 등을 비교한 결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이에 대해 조 의원은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당시 문화재위원회 간사를 맡던 공무원이 활자의 조판실험 결과를 보고할 때 일부 주요사항을 누락하거나 통계 분석을 잘못 적용하여 결론이 뒤집힌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 의원에 따르면, 감사원은 이에 대한 제보를 접수해 조사한 후 위와 같은 내용을 확인하고 지난 9월 24일 “국가유산청에서 재심 여부를 판단하는 게 적절하다”라며 이첩했다.

조 의원은 허 청장에게 “감사원이 국가유산청에 이첩한 이후 진행상항을 알고 계시냐”라고 물었다. 이에 허 청장은 “네”라고 답한 뒤 “자체적으로 다시 한 번 면밀히 검토해야 하겠다라고 이야기 됐다”라고 밝혔다. 그는 “출처, 소장 불분명한 거와 청동 소반, 초두 같은 것을 비교 분석할 필요가 있다”라고 덧붙이며 “의원님 말씀대로 진위 여부에 대해서 반드시 다시 한 번 판단해야 하겠다고 생각한다”라고 답했다. 조 의원은 “추가 증거는 소유자 측에서 제기한 것으로, 진위 여부를 부정하는 요소가 아니라 확실시 하는 것”이라며 “금속활자가 담겨 있는 그릇”이라고 강조했다.
조 의원은 철저한 조사를 당부한 뒤 지난 2017년 문화재위 담당 공무원이 실제로 전횡을 했는지도 살펴달라고 했다. 당시 문화재위원들이 증도가자가 직지심체요절보다 앞선 금속활자로 판명되면 직지 연구로 알려진 본인들의 권위가 떨어질까봐 고의로 문화재 지정을 회피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실제로 증도가자의 문화재 지정이 보류된 후 당시 문화재위원과 정권 실세 유착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활자 소유자가 고미술갤러리를 운영한다는 이유로 문화재위원들이 “장사하는 사람 물건을 보물로 지정할 수 없는 거 아니냐”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나돌았다. 당시 문화재청장은 이른바 ‘문화재계 마피아’들로부터 “증도가자를 문화재로 지정하면 법정에 세우겠다”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고 증언했다. 세계 인쇄 문화를 바꿀 수 있는 유물을 두고 순수하게 문화재적 가치를 따진 것이 아니라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세력 다툼이 이면에서 벌어졌던 셈이다.
허 청장은 “확인해봐야 하겠지만, 역사를 왜곡하는 사람이 있으면 안 되겠다”라는 말로 재검토 의지를 밝혔다.
장재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