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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경제신문, 25.10.17) [국감2025] 세계 최고(最古) 금속활자 '증도가자', 7년간의 누명 벗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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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245
  • 작성일25-10-17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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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도가자' 재심의 점화…감사원 "2017년 심의 과정 문제 있었다"
국가유산청, 재조사 착수 시사…“역사 왜곡 있어선 안 돼”

 

‘증도가자’ 59점(위)과 ‘네다리형 고려 금속활자’ 42점. ⓒ현대경제신문 DB
‘증도가자’ 59점(위)과 ‘네다리형 고려 금속활자’ 42점. ⓒ현대경제신문 DB


[현대경제신문 박명섭 기자] 고려시대 금속활자로 알려진 ‘증도가자(證道歌字)’의 문화재 지정 심의를 둘러싼 논란이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2017년 문화재위원회가 부결 결정을 내렸던 과정에 다수의 위법·부당 사항이 있었다는 감사원 조사 결과가 나오면서 재심의를 통한 진실 규명이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16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가유산청 국정감사에서 조계원 의원(더불어민주당, 전남 여수시을)은 7년 전 증도가자의 국가유산 지정 심의와 관련해 최근 감사원의 감사 결과를 공개하며 당시 심의위원들에 대한 질타와 함께 철저한 조사를 통한 진실 규명을 촉구했다. 조 의원은 “당시 심사를 맡았던 담당 공무원이 현재 국가유산청 기획조정관으로 일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2010년 9월 1일, 서지학자 남권희 교수(경북대)가 고려시대 금속활자를 발견했다고 발표하면서 알려진 증도가자는 고려시대에 제작된 보물 제758호 ‘남명천화상송증도가(南明泉和尙頌證道歌)’를 찍어낼 때 사용한 금속활자다. 남명천화상송증도가는 1239년 고려시대에 제작된 책으로, 당나라 현각 스님이 도를 깨달은 것을 노래한 내용을 담고 있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1점, 다보성갤러리에서 101점을 보유하고 있으며, 북한에서 5점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이것이 진품으로 인정될 경우,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보다 최소 138년 이상 앞선 유물이 된다. 직지심체요절이나 서양의 ‘구텐베르크 성경’은 인쇄본만 남아있는 반면, 증도가자는 실물 활자 그 자체라는 점에서 독보적인 역사적 가치를 지닌다.

 

과거 학계의 진위 논란 끝에 국립문화재연구소는 고려시대 진품이 맞다는 조사 보고서를 내놨으나, 2017년 문화재위원회는 이 결과를 뒤집고 부결을 결정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출처 불분명과 비교 연구 불가 등이었다.
 

16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조계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오른쪽)이  허민 국가유산청장에게 증도가자에 대해 질문 하고 있다. ⓒ국회방송 갈무리
16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조계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오른쪽)이 허민 국가유산청장에게 증도가자에 대해 질문 하고 있다. ⓒ국회방송 갈무리


최근 감사원 조사 결과, 당시 심의 과정에 중대한 결함이 있었음이 드러났다. 감사원에 따르면, 2017년 심의 당시 담당 간사(공무원)가 활자 조판 실험 결과를 보고하면서 일부 주요 사항을 누락하거나 통계 분석을 잘못 적용해 결론이 뒤집히는 등 다수의 위법 또는 부당사항이 확인됐다. 

감사원은 '지정 여부 판단'은 위원회의 고유 권한이라는 점을 고려해 직접적인 결론을 내리는 대신, 소관 기관인 국가유산청이 재심의 여부를 직접 판단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보고 관련 내용을 국가유산청에 이첩했다.

조계원 의원이 이같은 사실을 알고있느냐고 묻자 허민 국가유산청장은 감사원으로부터 관련 내용을 최근에 전달받았다고 답했다. 허 청장은 “자체적으로 다시 한번 면밀히 검토하겠다”며 재심의 의지를 밝혔다. 그러면서 “함께 출토된 청동 소반이나 초두 같은 유물도 비교 분석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조 의원은 “청동 소반이나 초두는 금속 활자가 담겨 있던 그릇들이며, 진품임을 확인하기 위해 활자를 소장한 소유자 측에서 추가로 제기한 것으로, 진위 여부를 부정하는 요소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일각에서는 '직지'의 권위가 떨어질 것을 우려한 관련자들이 고의로 (증도가자 지정을) 막은 것 아니냐는 의혹도 있다”며 철저한 조사를 촉구했다. 허민 청장은 "역사를 왜곡하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답했다.

소유자인 다보성갤러리 김종춘 대표는 “2017년 심의 결과가 공식 통보되지 않았으므로 절차상 종결된 것이 아니다”라며 당시의 부당한 결정을 바로잡고 공정한 재심의가 진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2010년 최초 발표 이후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일본 PaleoLabo社, 서울대기초과학공동기기원에서 총 4차례의 탄소연대 측정을 실시한 결과, 13세기 제작 금속활자로 판명된 바 있지만 2017년 당시 문화재위원회는 증도가자에 대한 문화재 지정을 부결했다. 

감사원 조사에서 특정된 2017년 심의 당시 간사(현 국가유산청 기획조정관)는 활자 조판 실험 결과 보고시 일부 주요 사항 누락 및 통계 분석을 잘못 적용해 결론을 뒤집었다. 뿐만 아니라 회의록에서 “(증도가자를) 부결시키게 되면 저희 청에서 다른 증거를 찾고 북한의 것도 요구하고 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기지 못한다”며 부결이 오히려 문화재청의 수고를 덜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외에도  △전문성이 없는 비전문가가 전문가를 검증하거나 △ “장사하는 사람 물건을 보물로 지정해 값이 뛰면 누가 책임지느냐”며 유물의 가치보다 소유주 신분을 문제 삼거나(직지 연구로 학문적 성과를 이룬 당시 동산분과 위원장) △지정은 거부하면서도 13세기에  제작된 금속활자임은 인정하며 해외 유출 방지 필요성을 언급하는 모순된 행태를 보였다. 심지어 당시 문화재청장이 이른바 문화계 마피아 등 특정 세력으로부터 “증도가자를 문화재로 지정하면 법정에 세우겠다”는 협박을 받았다는 증언 등 당시 부결 결정은 허점 투성이라는 지적이다.

김 대표는 “국가유산청은 최근 국정감사 과정에서 일부 국회의원들이 요청한 관련 자료 제출 요구도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러한 행정 절차의 불투명성과 자료 비공개는 국민의 알 권리와 행정의 공정성 원칙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종춘 대표는 “중국 일부 학자들이 ‘증도가자는 송·원나라 유물’이라며,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려는 시도까지 포착되고 있다”며 “한국에서 증도가자의 가치를 폄훼하는 사이, 중국은 이를 자국의 유물로 편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스스로 걷어찬 위대한 문화유산을 중국에 빼앗길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