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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경제, 25.10.20) “증도가자 조사과정 왜곡...세계 인쇄문화 바꿀 유산이 사장될 뻔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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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일25-10-23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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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도가자 찍은 금속활자 소장자 김종춘 다보성갤러리 회장 인터뷰
 

한국 고미술계의 권위자 김종춘 다보성 회장은 지금도 ‘증도가자(證道歌字)’가 세계적인 유물이란 사실에 확신을 갖고 있다. 진위 논란이 시작된 2010년 이후 약 16년의 긴 세월을 실체 규명에 홀로 싸워 왔다. 그동안 투자한 돈만도 수 십억원에 달했다. 고려 때 불교서적 증도 가자를 인쇄한 금속활자를 소장했다는 이유만으로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들 역시 힘든 세월을 겪어왔다. 일부 학계의 비난과 반박의 ‘화살’에 정신적인 고통도 컸지만 ‘진실은 끝내 승리한다’는 절체절명의 원칙에 무릎을 꾾지 않았다. 다행이도 최근 감사원의 감사 결과 증도가자 논란의 이면에는 전문가들 간의 라이벌 의식, 박물관을 포함한 유물 소장자 간의 시각 차이와 파벌 다툼 등이 깔려 있다는 걸 확인했다. 세계 인쇄 문화를 바꿀 수 있는 유물의 가치를 따진 것이 아니라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세력 다툼이 이면에서 벌어졌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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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춘 다보성갤러리 회장이 20일 서울 경운동 사물실에서 증도가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안윤수 기자

 

19일 서울 경운동 다보성갤러리에서 만난 김종춘 회장은 “세계 인쇄 역사를 새롭게 쓸 수 있는 위대한 문화유산 증도가자가 부당한 사유로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채 영원히 사장될 뻔했다”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김 회장은 2010년 남권희 경북대 문헌정보학과 교수가 ‘증도가자’의 현존에 대해 언론에 공개, 파장을 일으킨 이후 이듬해 소장 중인 금속활자를 문화재청에 ‘문화재 지정’ 신청을 했고, 꾸준히 “증도가를 인쇄한 고래시대의 금속활자가 맞다”는 주장을 펴왔다.

하지만 증도가자는 8년전 국가유산청 문화재위원들의 진위 논란 끝에 보물 지정이 무산됐다. 불교서적 '증도가'와 글씨체가 달라 진위가 불분명하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최근 감사원 조사에서 당시 문화유산청이 핵심 자료 제출을 누락했던 정황이 드러나 재검토에 들어갔다.

김 회장은 “담당 간사가 통계 분석을 잘못 적용해 결론이 뒤집히는 다수의 위법 또는 부당한 사실이 있었다는 점이 드러났다”며 “감사원이 문화유산청에 이를 재조사하도록 심의 이첩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강조했다.

증도가자는 ‘남명천화상송증도가(南明泉和尙頌證道歌)’를 인쇄한 금속활자다. 이 활자로 찍은 책은 현재 남아 있지 않고 금속활자본을 토대로 고려 고종 26년(1239년) 목판본을 만들어 인쇄한 책이 보물 제758호로 지정돼 있다. 증도가자가 실물로 확인되면 지금까지 공인된 세계 최고(最古)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1377년)보다 최소 138년 앞서는 금속활자 유물이 된다. 무엇보다 실물(활자)이 남아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직지심체요절과 서양의 구텐베르 성경(1452)이 금속활자로 찍은 인쇄본 책만 존재하고 실제 활자는 남아 있지 않다.


김 회장은 2011년 국가유산청(옛 문화재청)의 엄승룡 당시 문화재정책국장으로부터 보물 지정 신청을 여러 차례 권유받았다. 엄 국장은 사실 증도가자 금속활자의 역사적 의미를 확신한 듯 국보급 문화재 추진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2017년 국가유산청은 고려시대 금속활자일 가능성은 있으나 비교 조사가 불가능하고, 출처 및 소장 경위 불분명하다는 등의 이유로 보물 지정을 거부했다.

“엄승용 전 국가유산청 정책국장이 제게 두 번이나 찾아와 ‘증도가자’를 국가지정 문화재로 추진하겠다고 제안해 왔죠. 그러나 일부 ‘문피아(문화재+마피아)’ 세력이 제동을 건 것 같아요. 실제로 나선화 당시 국가유산청장은 문화계 마피아 세력으로부터 ‘증도가자를 문화재로 지정하면 법정에 세우겠다’는 협박을 받았다고 증언하기도 했거든요. 문피아의 반대와 협박으로 세계적인 문화유산이 빛을 보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김 회장은 “증도가자 논란의 이면에는 전문가들 간의 경쟁의식, 소장자 간의 시각 차이와 파벌 다툼 등이 깔려 있다”며 “청주고인쇄박물관 역시 증도가자가 진짜로 판명되면 ‘직지의 고장’이라는 청주의 위상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를 비쳐 왔다”고 그간의 경위를 설명했다.

그는 보물 지정 신청 거부에 대한 또 다른 논리적 문제점으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잘못된 판단과 시대적 차이를 무시한 비과학적 감정의 결과물이란 주장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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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보성갤러리가 소장하고 있는  고려시대 금속활자 . 사진= 다보성갤러리 제공


“금속활자 분야에 대해 전문성이 없는 비전문가가 전문가를 검증하는 비정상적 절차였으며, 교차 검증이나 공개 토론 요청이 모두 묵살 됐거든요.”

김 회장은 이런 행태에 대해 분노를 터뜨렸다. “국립과학수사의 한 연구원은 증도가자 가짜 주장 후 2016년 공업연구관으로 승진했고, 이후 2021년까지 문화재 전문위원(위변조 분야)으로 위촉되어 활동하고 있습니다.”

김 회장은 또 “직지 연구로 알려진 박모 당시 문화유산청 동산분과위원장이 ‘장사하는 사람 물건을 보물로 지정해 값이 뛰면 누가 책임지느냐’며 유물의 진위보다 소유자의 신분을 문제 삼았다”는 의혹을 떨어놨다.

김 회장은 ‘입수경위가 불분명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강하게 반박했다.  "2013년 문화재청에 소명한 바처럼 ‘일본 고미술상 → 박00 → 김00 → 김00 → 이00 → 이00’ 순으로 이뤄졌다. 지금까지 현존하는 국가 문화재가 모두 그 출처나 경위가 분명하지 않을 뿐 아니라 문화재보호법 및 문화재보호법 시행령에서도 그 출처와 취득경위를 국가 문화재 지정 요건으로 명시하지 않고 있기에 입수 경위를 문제로 삼는 것은 지금도 이해가 안된다.

김 회장은 보물지정 심사위원회 운영 규정 등 절차적 하자도 신랄하게 비판했다.  “회의록에 출석 위원 수 등 필수 기재가 불명확합니다. 전문 조사단의 의견을 합리적 근거 없이 변경해 직권남용 의혹을 받을 수 있어요. 심의 결과를 신청 당사자에게 공식 통보하지 않은 건 행정절차법 위반이구요.”

국내서 진위 논란이 확산되는 가운데 중국은 증도가자를 자국 유물이란 점을 강조하며 유네스코 등재를 추진하는 움직임도 보이는 묘한 상황도 벌어졌다.  김 회장은 “‘중국 단둥 가짜 공장설’을 퍼뜨린 핵심 인물은 60억원을 받기로 하고, 허위 사실을 유포했다는 증언도 들었다”고 했다. 상황이 이처럼 꼬여가자 급기야 국가유산청은 재조사를 통해 역사 왜곡을 막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허민 국가유산청장이 국정감사에서 이 부분에 대해서는 진위에 대해서 다시 한 번 판단해야 하겠다 생각하고 있다고 밝힌 것이다.

 

 

김 회장은 특히 감사원의  조사관 면담 내용을 낱낱이  밝혔다.  그는  "감사원 조사관이 조판 실험 및 결과 위원회 보고에서 문제가 있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지정조사 보고서에는 활자본과 번각본의 크기 차이에 대해 속명의록의 경우 0.3~0.5cm, 석보상절의 경우 0.8cm로 기술되어 있는데, 요약 보고서 작성과 간사의 위원회 보고 시 ‘속명의록은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했죠. 석보상절의 0.8cm 수축 사실을 누락한 겁니다.  이로 인해  당시 문화재심의에서는 0.45cm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신청 활자가 조판에 식자(植字)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결국  감사원은 신청 활자로 ‘증도가를 인출하였다고 보기 어렵다’는 조판 실험 결과는 ‘증도가의 인출이 가능하였다’로 바뀌어야 한다는 의견을 낸 것이다.

김 회장은  특히 “소장 경위에 대한 불분명 의견  역시 잘못됐다는 감사원의 지적”도 들려줬다.
”감사원은 해당 활자의 경우 발굴 유물이 아닌 전래 유물이어서   최초 발굴 장소, 초기 소장자 등이 불분명한 것은 당연한데 이에 대한 고려 없이  ‘소유 경위가 불분명하다’고 하는 것은 무리라는 얘기를 한 겁니다.”

김회장은   “청동 초두와 수반의 제출 요구는 과도한 요구라는 감사원 의견”도  덧붙였다.  

 “감사원 측은 청동 초두와 수반은 보물 지정 신청에 포함되지 않은 유물이고, 보물 지정 신청 활자와 함께 출토되었거나 소유 전과정에서 함께 유통되었다고 할 수 없다고 지적했거든요.  유물의 소유관계가 불분명한데 신청자의 소유도 아닌 것을 신청인에게 제출을 강요하는 것은  민원처리법 등 관계 규정을 위반하였을 소지가 많다고 했씁니다."
 김 회장은  활자의 해외 유출 방지 대책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감사원의  지적사항도  소상히 밝혔다.
”당시 위원회 간사는 해당 유물이 해외 유출될 우 막을 수 있는지 물으니 ‘문화재라고 볼 수 없어 막을 수 없다’고 했지만 감사원 측은 위원회의에서 13세기 유물로 인식하고 부결할 경우 국외 유출이 우려된다고 검토하였으면서도 유출 방지 대책을 마련하지 않은 것은 잘못이고, 유출을 방지할 수 있는 대책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김 회장은   지난 2017 국립고궁박물관 회의실에서 진행한 ‘증도가자(고려금속활자) 보물 지정’ 관련 회의록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보물지정 부결 과정이 ‘3류 코미디’ 같았어요.  당시 문화재위원자격으로 참석한 위원은 신승운(위원장) 곽노봉 김명규 오용섭 유창종 이원복 진화수 최응천 등 8명입니다.  부결을 승인한 최응천 위원은 윤석열 정부 때 국가유산청장을 지냈구요. 지정조사단은 현재 검증할 수 있는 모드 방법을 동원했는데 ‘유보’한다는 게 이상하다며 부결 쪽으로 몰고 갑니다.”

 그는  “보물지정을 유보할 경우 남북문제와 중국의 외교적 문제를 거론될 수 있어 부결한 것 같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회의 녹취록에는 소장가가 자료를 출처를 보완해서 신청해도 지정하지 않겠다는 의견들이 발견됩니다. 더구나 만일 북한에서 100% 같은 활자가 출토되더라도 신청해줄 수 없다는 의도가 다분히 깔려 있어요. 활자의 출처가 불분명하기 때문에 부결을 하되 해외반출 역시 막겠다는 이중전략을 구사한 셈이죠.”


 다만 일부 심의위원들은 서체 유사도가 낮다는 등의 이유로보물  지정을 거부했지만,  13세기에 제작된 금속활자임은 인정했고, 해외 유출 방지 필요성도 언급한 것으로 안다고 했다.

따라서 증도가자가 직지와 달리 실제 금속활자가 남아있는 만큼 그 가치가 인정된다면 세계적으로도 큰 반향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김회장은 ”2017년 문화재위원회의 심의 결과는 당사자에게 정식으로 통보되지 않았으므로, 해당 심의는 절차상 종결된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증도가자 관련 결정에는 절차적·내용적 측면에서 수많은 의혹과 문제가 존재합니다. 이에, 당시의 부당한 결정에 대한 재검토를 통해 문화재위원회 안건으로 다시 상정하여 공정하고 투명한 논의와 심의를 진행해 주실 것을 간곡히 요청드립니다”

 

김경갑 기자 kkk10@d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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