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경제신문, 25.12.26) 새 국면 맞은 '증도가자', 국가유산청 재심의 진행에 시선 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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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25-12-29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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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 “2017년 부결 당시 실험 결과 왜곡···‘조판 불가능’ 결론은 잘못”
국가유산청, 1월 중 자체 감사 착수···15년 진실 공방 마침표 찍을까

현대경제신문 박명섭 기자 |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로 소개되며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던 ‘증도가자(證道歌字)에 다시금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지난 2017년 보물 지정 부결 이후 잊히는 듯했던 진실 공방이, 최근 국가유산청 국정감사를 통해 당시 심의 과정의 조작 정황이 드러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26일 본지 취재결과 국가유산청은 오는 1월 중 증도가자 관련 사안에 대한 감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이는 최근 국정감사에서 조계원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의 지적사항과 '문화재위원회의 심의 과정에 실험 데이터 왜곡이 있었다'는 감사원 조사 결과에 따른 후속 조치다.
◆ 감사원 “조판 실험 데이터 왜곡···‘불가능’ 결론은 억지”
논란의 핵심은 2017년 문화재위원회 심의 당시 결정적 부결 사유였던 ‘활자 조판 실험’ 결과다. 감사원은 지난 9월, 당시 심의 과정에서 담당 간사(현 국가유산청 기획조정관)가 실험 결과를 왜곡해 보고한 사실을 적발했다.
감사원 감사 결과에 따르면, 당시 담당 간사는 ‘석보상절’의 수축 정도(0.8cm) 등 조판이 가능하다는 증거 데이터를 고의로 누락하거나 사실과 다르게 보고한 것으로 밝혀졌다. 감사원은 “정상적인 통계 분석을 적용했다면 ‘식자(조판)가 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왔어야 했다”며 당시 ‘조판 불가’ 판정은 잘못된 것이라고 명시했다.
지난 2010년 9월 증도가자를 처음 세상에 알린 남권희 경북대 명예교수는 "감사원이 지적한 핵심은 당시 문화재청이 통계를 왜곡해 ‘활자로서 기능하지 못한다’는 결론을 억지로 도출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 심의 과정에서 30여 명의 전문 연구자가 참여해 보고서를 냈지만, 이들의 의견을 듣는 공청회 등은 전무했다"며 "이미 과학적 분석이 끝난 상태이기 때문에, 추가적인 연구보다는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는 재심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직지보다 138년 앞선 ‘실물’ 금속활자···가치는
증도가자는 당나라 현각 스님이 도를 깨달은 것을 노래한 내용을 담은 ‘남명천화상송증도가(南明泉和尙頌證道歌, 보물 제758호/1239년)’를 인쇄할 때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금속활자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1점, 다보성갤러리에서 101점을 보유하고 있으며, 북한에서 5점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학계에서는 증도가자가 공인될 경우 1377년 간행된 ‘직지심체요절’보다 최소 138년 이상 앞선 유물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현재 인쇄본만 남아있는 ‘직지’나 서양의 ‘구텐베르크 성경’과 달리, 증도가자는 고려시대 금속활자 ‘실물’ 그 자체라는 점에서 독보적인 가치를 지닌다.
실제로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일본 PaleoLabo사, 서울대 기초과학공동기기원 등 국내외 유수 기관에서 4차례에 걸친 탄소연대 측정과 성분 분석을 통해 13세기(1200년대~1300년대 초)에 제작된 진품이라는 과학적 결론이 도출된 바 있다. 국립문화재연구소 역시 조사 보고서를 통해 진품 의견을 냈었다.
남 교수는 "탄소연대 측정과 금속 성분 분석 등 과학적 검증은 이미 끝났으며, 2017년 부결 당시 문화재청 보고서조차 ‘조작'이나 '위작'이라는 말은 없었다"고 강조했다.

◆ “기득권 지키려 조직적 방해” vs “출처 불분명”
과학적 검증에도 불구하고 2017년 문화재위원회는 지정을 부결하면서 앞서 언급한 ‘조판 불가능’외에도 ‘출처 불분명’을 주요 이유로 들었다.
감사원은 출처 불분명에 대해 “전래 유물의 특성상 최초 소장자가 불분명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며 "이를 근거로 한 부결은 무리였고, 소유자가 소장하지 않은 물품 제출을 강요한 행위 역시 과도했다"고 지적했다.
남 교수는 “이제 재심의를 한다면 문제 삼을 부분은 출처 문제 뿐일텐데, (증도가자는)이미 입수 경위 등 출처 조사가 완료됐고, 국내 지정 문화재 중 정확한 출처가 확인된 것은 3분의 1도 되지 않는다"면서 "출처를 문제 삼아 진위 자체를 부정하려는 태도는 잘못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소장자가 누구이든 간에 유물 자체의 진위 여부는 객관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직지 관련 학계 및 지역 세력의 조직적인 견제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조계원 의원은 “직지의 권위가 떨어질 것을 우려한 세력들이 고의로 지정을 막은 것 아니냐”며 당시 결과를 왜곡한 담당 공무원이 현재 국가유산청 핵심 보직에 있는 이해충돌 문제를 질타하기도 했다.
◆ 국가유산청 1월 감사 착수···‘제 식구 감싸기’ 우려도
국가유산청은 감사원과 국정감사에서 나온 지적을 수용해 오는 1월 중 증도가자 관련 사안에 대한 자체 감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하지만 "제식구 감싸기로 흐지부지 끝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증도가자 보물 지정 부결 2년 후인 2019년 국정감사 에서도 정재숙 전 문화재청장이 재검토를 약속했지만 후속 조치 없이 유야무야된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활자 소유자인 김종춘 다보성갤러리 대표는 “국가유산청은 문화재청 시절의 과오를 인정하고 투명하고 공정한 재심의를 통해 증도가자의 가치를 회복시켜야 한다”고 촉구했다.
국가유산청 관계자는 재심의 여부 및 일정에 대한 질문에 "현재로서는 1월 감사 진행 외에 확정된 바 없으며, 재심의 여부 및 향후 일정 등은 감사 결과가 나온 후 검토할 사안"이라며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15년 넘게 이어진 증도가자 진실 공방이 이번 국가유산청 감사를 계기로 과학적 검증을 통해 왜곡된 결과를 바로잡고 세계 인쇄 역사를 다시 쓰는 계기가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