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26.08.11) 문제 드러난 심사 또 그 사람들이…국가유산청 '증도가자 재심의' 믿을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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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26-08-11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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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도가자 활자 모습[사진=한국고미술협회]](https://image.ajunews.com/content/image/2026/08/11/20260811164741981206.jpg)
세계 최고(最古)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보다 138년 앞선 금속활자일 가능성이 제기돼 온 ‘증도가자(證道歌字)’의 재심의 여부가 오는 13일 결정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2017년 증도가자의 보물 지정 심사에 관여했던 전문위원 일부가 현재도 국가유산위원회 동산문화유산분과에 몸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거 심사에 참여했던 사람이 같은 유물의 재심의에도 관여할 수 있느냐는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현행 국가유산위원회 규정은 해당 안건에 직접 관여했던 위원이나 전문위원을 조사·심의·의결에서 제외하도록 하고 있다. 2017년 심사 과정에서 주요 자료 누락과 잘못된 통계 적용이 있었다는 감사원 조사 결과까지 나온 만큼 재심의가 시작된다면 당시 심사 관여자들의 참여 자격부터 따져봐야 한다.
증도가자는 1239년 제작된 보물 제758호 ‘남명천화상송증도가’를 찍는 데 사용됐다는 주장이 제기돼 온 금속활자다. 이 주장이 과학적 검증을 거쳐 확인되면 1377년 인쇄된 직지보다 138년 앞선다. 직지는 인쇄본만 남아 있지만 증도가자는 금속활자 실물이라는 점에서도 학계의 관심을 받아왔다.
증도가자의 보물 지정 신청은 2017년 문화재위원회 심의에서 부결됐다. 당시에는 증도가를 인쇄할 때 사용한 활자로 보기 어렵고 출처와 소장 경위도 충분히 확인되지 않았다는 점 등이 부결 사유로 제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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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사원서 확인된 2017년 심사 문제…핵심 자료 누락·사실과 다른 보고
논란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감사원 조사 결과가 공개되면서 다시 불붙었다. 2017년 심의 과정에서 조판 실험의 주요 결과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고 통계 분석에도 문제가 있었던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당시 지정조사 보고서에는 번각본인 ‘속명의록’과 ‘석보상절’의 크기가 원래 인쇄본보다 각각 0.3~0.5㎝와 0.8㎝ 줄어든 것으로 기록돼 있었다. 그러나 당시 심의 간사는 속명의록은 크기 차이가 없다는 취지로 보고했고 석보상절에서 확인된 0.8㎝ 수축 사실은 위원들에게 알리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통계 분석에서도 문제가 확인됐다. 통계청 자문 내용을 제대로 적용했다면 활자를 배열해 인쇄판을 만드는 ‘식자’가 가능하다는 결과가 나와야 했지만 실제 심사에서는 불가능하다는 방향으로 결론이 내려졌다는 것이다.
심사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객관적인 자료가 위원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상태에서 보물 지정 여부가 결정됐다는 얘기다. 감사 결과가 공개된 뒤 국가유산청도 증도가자의 진위를 다시 판단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내놓고 재심의 가능성을 검토해 왔다.
문제는 재심의가 결정될 경우 누가 조사하고 누가 판단하느냐다. 지난 5월 출범한 국가유산위원회에서 증도가자와 같은 유물은 동산문화유산분과가 담당하게 된다.
현재 이 분과에 소속된 전문위원 가운데 2명이 2017년 증도가자 심사에도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명은 7차례 연속 위촉돼 14년 이상 활동했고 다른 한 명도 6차례 연속 위촉돼 12년가량 전문위원을 맡은 것으로 전해졌다.
◆ 당시 심사 관여자 여전히 위원회에…재심의 맡겨도 되나
장기간 전문위원을 맡았다는 사실 자체가 현행법 위반은 아니다. 현재 국가유산위원회 규정에는 위원과 전문위원의 연임 횟수를 제한하는 조항이 없다.
그러나 과거 같은 유물의 심사에 직접 참여했던 사람이 다시 조사와 판단에 관여하는 문제는 다르게 봐야 한다.
현행 대통령령인 국가유산위원회 규정 제11조는 위원이나 전문위원이 해당 안건에 관해 용역을 수행했거나 다른 방법으로 직접 관여한 경우 해당 안건의 조사·심의·의결에서 제척하도록 하고 있다.
법률적으로는 2026년 재심의가 2017년 심사와 같은 ‘해당 안건’에 해당하는지가 먼저 쟁점이 된다. 같은 안건으로 평가된다면 당시 심사에 직접 관여했던 위원이나 전문위원은 제11조에 따른 제척 대상이 된다.
국가유산청이 이번 절차를 2017년 심사와 별개의 새로운 안건으로 판단한다고 해도 문제는 끝나지 않는다. 같은 규정은 당사자가 위원이나 전문위원에게 공정한 조사와 심의를 기대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다고 판단하면 기피를 신청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제척과 기피는 취지가 조금 다르다. 제척은 규정에서 정한 사유가 있으면 심사에서 빠지도록 하는 것이고, 기피는 당사자가 공정한 판단을 기대하기 어렵다며 특정 위원이나 전문위원의 배제를 요구하는 절차다. 제척 사유가 있는 위원이나 전문위원은 스스로 심사에서 빠져야 하는데 이를 회피라고 한다.
제척 사유가 있는데도 회피하지 않는 경우에는 해촉 문제도 생길 수 있다. 국가유산위원회 규정 제12조는 제척 사유에 해당하는데도 스스로 회피하지 않은 위원이나 전문위원을 국가유산청장이 해촉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번 재검토는 전혀 다른 유물을 처음 심사하는 절차가 아니다. 감사원이 2017년 심사 과정의 문제를 확인한 뒤 같은 증도가자를 다시 들여다보는 과정이다. 당시 조사와 판단에 직접 참여했던 사람이 재심의에도 관여한다면 국가유산청은 제척 또는 기피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한 근거를 설명해야 한다.
전문위원의 역할도 단순한 자문에 그치지 않는다. 현행 법령은 보물 등의 지정을 위해 해당 분야 위원이나 전문위원 등 관계 전문가 3명 이상에게 조사를 맡기고 조사보고서를 제출받도록 하고 있다. 어떤 전문가가 조사에 참여해 어떤 의견을 내느냐가 이후 심의의 출발점이 되는 셈이다.
◆허위공문서작성·직권남용까지 거론…2017년 심사 책임은 어디에
2017년 심사 과정에서 확인된 문제는 절차적 공정성에만 머물지 않는다. 자료 작성과 보고가 어떤 방식으로 이뤄졌는지에 따라 형사법상 문제도 제기될 수 있다.
당시 담당 공무원이 공식 심사자료나 보고문서를 작성할 직무상 권한을 가지고 있으면서 실제 측정 결과와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도 행사할 목적으로 다른 내용을 기재했다면 형법상 허위공문서작성죄가 문제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단순한 판단 착오와 객관적 사실을 다르게 작성한 행위를 구분하는 것이다. 실제 측정값이 0.3~0.5㎝ 수축으로 나왔다는 사실을 알고도 공식 문서에 ‘차이가 없다’고 작성했다면 전문적 견해의 차이와는 성격이 다르다.
반면 통계 결과를 놓고 ‘식자가 가능하다’거나 ‘불가능하다’고 평가한 부분은 전문적 판단이 포함돼 있다. 이 대목은 곧바로 허위공문서작성 문제로 연결하기보다 누가 어떤 분석 방법을 적용했고 어떤 근거로 결론을 바꿨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도 검토 대상이다. 당시 담당 간사가 지휘·감독 등 자신의 직무상 권한을 이용해 특정한 심사 결론을 만들기 위해 관계자에게 법령상 의무 없는 일을 시키거나 정당한 권리행사를 방해했다면 형법상 직권남용 문제가 제기된다.
따라서 2017년 심사에서 확인해야 할 것은 자료가 잘못 전달됐다는 결과만이 아니다. 누가 사실과 다른 내용을 작성하거나 보고했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지시가 오갔는지, 다른 심사 관계자들이 이를 알고 있었는지까지 확인해야 당시 부결 과정에서 벌어진 일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 장기 위촉 전문위원 그대로… 재심의 공정성 논란 커져
장기 연임 문제도 이번 재심의와 맞물려 다시 주목받고 있다. 정부는 2019년 문화재위원회 규정을 개정하면서 위원의 연임을 두 차례로 제한했다.
당시 정부는 장기간 연임을 막고 위원회 운영의 공정성을 높이겠다는 취지를 내세웠다. 그러나 2023년 규정을 다시 고쳐 ‘두 차례만 연임할 수 있다’는 제한을 없앴다.
다만 당시 두 차례 연임 제한은 ‘위원’에게 적용됐고 전문위원에게 같은 연임 상한을 둔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현재 논란이 된 전문위원들의 12년·14년 장기 위촉 자체를 규정 위반이라고 볼 수는 없다.
쟁점은 연임 횟수가 아니다. 같은 사람이 오랫동안 특정 분야의 조사 업무를 맡아온 상황에서 과거 자신이 직접 관여했던 같은 유물의 재심의까지 다시 맡는 것이 적절하냐는 문제다.
전문성을 유지하기 위해 경험 많은 전문가가 계속 참여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과 과거 심사 관여자가 자신의 과거 판단이 문제 된 사안을 다시 심사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정부가 별도로 제척·기피·회피 제도를 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당시 담당 간사까지 본청 복귀…국가유산청 신뢰 더 흔들
2017년 증도가자 심의 간사를 맡았던 황 모 국가유산청 국장의 최근 인사도 주목받고 있다. 황 국장은 올해 1월 전주 소재 무형유산국장으로 전보됐다가 지난 7일 대전 본청 자연유산국장으로 다시 자리를 옮겼다.
증도가자 재심의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알려진 13일을 엿새 앞둔 시점이다. 황 국장이 맡은 자연유산국은 증도가자를 심의하는 동산문화유산분과의 직접 담당 부서는 아니며 국가유산청도 이번 인사와 증도가자 문제는 관계가 없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따라서 인사 시점만으로 재심의와의 연관성을 단정할 수는 없다. 확인해야 할 것은 황 국장이 이번 재검토 과정에서 실제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다.
황 국장이 2017년 심사자료를 이번 절차에 다시 제공했는지, 담당 공무원과 증도가자 심사 방향을 논의했는지, 위원이나 전문위원과 관련 사안을 협의했는지가 확인 대상이다. 감사원 조사에서 당시 보고 과정의 문제가 드러난 만큼 국가유산청도 이번 절차에서 황 국장의 관여 범위를 밝힐 필요가 있다.
◆과거 심사 관여자 남은 국가유산청…이번 재심의 믿을 수 있나
국가유산청이 오는 13일 증도가자의 재심의를 결정한다면 가장 먼저 정리해야 할 것은 심사 구성이다. 2017년 증도가자 심사에 관여했던 현직 위원과 전문위원이 누구인지, 당시 이들이 어떤 조사와 판단을 맡았는지부터 확인돼야 한다.
이들이 이번 조사와 심의에서 빠지는지도 밝혀야 한다. 같은 안건이 아니어서 제척 대상이 아니라는 판단을 내렸다면 그 근거가 무엇인지, 기피 또는 회피 사유도 없다고 보는지 설명할 필요가 있다.
2017년 당시 담당 간사였던 황 국장을 비롯해 과거 심사에 관여했던 국가유산청 관계자들이 이번 재심의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맡는지도 공개해야 한다. 과거 심사의 문제 때문에 다시 판단하는 절차라면 그 문제를 만든 사람이나 당시 판단에 직접 관여한 사람과 거리를 두는 것이 먼저다.
판단하는 사람이 과거 심사와 얽혀 있다면 결론이 어느 쪽으로 나오더라도 신뢰를 얻기 어렵다. 특히 2017년 심사에서 주요 자료가 빠지고 통계 결과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는 감사원 조사 결과까지 나온 상황이다.
국가유산청이 재심의에 나선다면 먼저 정리해야 할 것은 심사 주체다. 2017년 심사에 관여했던 인사들이 이번 심사에서도 참여할 수 있는지부터 따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