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김정희 묵죽도 > 한국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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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 작품
  • k060
  • 추사 김정희 묵죽도
  • 조선후기 | 62×37.5cm
  • 시작일 : 2021-09-27 00:00:00
    종료일 : 2022-10-31 00:00:00
  • 3,025
  • 이체,현금,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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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정보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1786~1831) 선생이 그린 묵죽도(墨竹圖)이다. 화폭에는 잎이 듬성듬성 나 있는 대나무 두 그루가 왼쪽 아래서서 오른쪽 위로 곡선을 이루며 서 있으며, 그 뒤로 바위처럼 보이는 물체가 그려져 있다. 그런데 대나무는 왠지 힘이 없어 보인다. 노쇠한 늙은 대나무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잎에서 당당한 기풍이 느껴진다. 대나무는 추운 겨울에도 푸른 잎을 자랑하며 강풍에도 휘어질망정 꺾이지 않아 선비들이 절개의 상징으로 사랑하며 사군자 중의 하나 즐겨 그린 소재이다.
이 묵죽도는 그러한 선비정신을 반영하고 있다. 이는 그림 옆의 여백에 쓰인 당나라의 이태백으로 유명한 시인 이백(李白, 701~762)이 지은 ‘늙은 대나무를 사랑하며’라는 뜻의 시 <자노죽(慈姥竹)>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자노죽>은 이백이 중국 당도현 북쪽에 있는 자노산(慈姥山)에서 마주한 늙은 대나무의 청정함에 감탄해 쓴 시로 《이백시가전집(李白诗歌全集)》에 수록되어 있다.
이렇게 그림과 함께 쓰인 시를 ‘제화시(題畵詩)’ 또는 ‘화제시(畵題詩)’라고 부른다. 그러나 제화시는 ‘그림에 맞춰 쓴 시’이고, 제화시는 ‘시를 그린 그림 속의 시’로 의미의 차이가 있다. 이렇게 시와 글씨, 그림에 뛰어난 사람을 ‘시서화(詩書畵) 삼절(三絶)’이라고 부른다. 추사 역시 시를 잘 짓고, 추사체와 같은 글씨를 잘 쓰고, <세한도> 같이 뜻 깊은 그림을 잘 그린 시서화 삼절이었다.
추사가 쓴 이백의 시 <자노죽>은 화면의 왼쪽에서 시작해 오른쪽 아래에서 끝이 나는데, 그 말미에 용산(龍山) 서실에서 신묘년(1831년) 봄 2월(양력 3월)에 그렸다고 썼다. 용산서실은 경복궁 서쪽의 정동에 있는 조부 김한신의 월성위궁에 있는 서재 이름인데, 용산은 추사 선생이 월성위궁으로 이사하기 이전 유년시절을 보낸 충남 예산의 옛집 뒤쪽에 있는 야트막한 야산의 이름이다. 신묘년은 추사의 나이 45세 때로 아버지 김노경이 윤상도 옥사로 고금도로 유배된 이듬해로서 추사체가 형성되기 전의 글씨인 <함추각행서대련(涵秋閣行書對聯)>를 남긴 해이다.
화면의 중심에는 두 그루의 대나무가 암벽을 배경으로 그려져 있다. 이 묵죽도는 추사가 유배된 아버지를 늙은 대나무[姥竹]에 비유하고, 정치적 탄압에도 굽히지 않는 아버지의 굳은 절개에 대한 사랑을 표현한 것이다.
이 <묵죽도>에 행서체로 쓰인 이백의 시는 아래와 같다.
野竹攒石生 들녘의 대나무 돌을 뚫고 피어있고
含烟映江岛 연기 머금은 자태 강가 섬에서 빛난다.
翠色落波深 물속에 드리운 푸른 잎새는 물결을 더욱 푸르게 하고
虚声带寒早 허정한 소리는 차가운 아침 기운 머금었다
龙吟曾未聽 이처럼 미묘한 龙吟曲을 일찍이 들어본 적 없고
凤曲吹应好 봉곡 같은 훌륭한 소리 잎새에 인다.
不学蒲柳凋 물가의 버드나무 추위에 시드나
贞心常自保 대나무는 늘 자신의 정절을 유지하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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